유배의 역사

유배(流配) 혹은 귀양((歸養), 정배(定配) 등으로 불리는 유형(流刑)은 대부분 근현대 이전에 존재했던 유형(流刑)의 한 종류이지만 역사적 사실로서의 하나의 문화에 포함된다고 할 수 있다. 유배는 ‘귀양’ 보낸다는 것처럼 형벌 가운데 하나였다. 유배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존재했으며, 조선시대에서는 사형 다음 가는 중벌이었다. 조선의 유배형은 중국 법제인 당률(唐律)과 대명률(大明律)의 영향을 받았다. 조선시대에는 다섯 가지 기본 형벌에는 사형(死刑), 유형(流刑), 도형(徒刑), 장형(杖刑), 태형(笞刑)이 있었는데, 이 가운데 유형(流刑)이 포함되어 있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나타난 유배지는 모두 408곳 정도이다. 이 중에서 경상도가 81곳으로 가장 많았고 전라도는 74곳, 충청도는 70여 곳에 달했다고 한다. 조선조의 유배 횟수로는 전라도가 약 915회로 가장 많았으며, 경상도는 670회, 충청도는 320회 정도였다고 한다. 그중에서 김만중의 경우처럼, 남해도로 귀양 온 유배인들의 특징은 단순한 죄인이 아니라 대부분 정적과 당쟁의 정치적 피해자 들이었다. 그들은 주로 문무고관들로서 고려시대 7여 명과 조선시대 179명 등으로 조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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