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만중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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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포 김만중(金萬重, 1637-1692)은 조선조 문신으로서 충절과 효행을 삶의 근간으로 여긴 선비로 대제학을 지낸 대학자이자 정치가였다.


그는 1637년, 인조 15년 2월 10일 병자호란 와중에서 강화도를 떠나 피란 가던 배 위에서 태어난 유복자였다. 그의 아버지 충열공 김익겸(金益兼)은 1637년 1월 23세 때에 청나라 군사에 의해 강화도가 함락되자 화약에 불을 질러 스스로 산화(散華)하였다. 죽은 이후에 영의정으로 추증되고 광원부원군에 추봉되었으며 시호는 충정(忠正)이다.


서포의 집안에 대한 세인의 평가와 칭송이 어떠했는지 문헌의 예로써, 이건명(李健命, 1663-1722)의 문집 『한포재집(寒圃齋集)』1권 시(詩)에 남긴 시 ‘광성부원권 김공만기 만’의 일부에서도 잘 나타난다.

김만중과 김만기는 충효사상을 삶의 근간으로 삼고 자신들의 집안을 명문 벌열(閥閱) 가문으로 성장시킨다. 

어머니에 대한 서포의 절대적 효심은 전술한 행장 속의 글뿐만 아니라, 소설, 시, 만필(漫筆, Random essays) 등에서도 나타난다. 그의 어머니에 대한 존숭(尊崇)과 효행은 자신이 겪은 질곡과 난세 속에서의 다양한 기록뿐만 아니라 유배문학을 통해서도 나타난다.

   부귀는 당대의 으뜸이고 / 富貴擅當世
   영광이 덕 있는 집안에 넉넉하여 / 榮光饒德門
   탁룡에 좋은 집 이어지고 / 濯龍連甲第
   병권 잡고 문단도 접하였지 / 戎鉞接詞垣
   형제분 서로 빛났고 / 棣萼交輝暎
   훌륭한 자제들 집안에 가득하네 / 蘭芽滿室繁
   임금님 향한 일념 남았으니 / 君親留一念
   무덤 속 영혼은 눈물 흘리시겠지 / 想泣夜臺魂

한포재집(寒圃齋集)』‘광성부원권 김공만기 만’의 일부

남해군 노도 문학의 섬 조감도
(김만중 유배콘텐츠 테마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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