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인 문화콘텐츠화 현황

1) 서포 김만중

예로부터 남해도는 산자수명(山紫水明)한 ‘일점선도(一點仙島)’라고 하였다. 주목할 점은 사면이 바다로 둘러 싸인 이른바 절해고도(絶海孤島)였던 까닭에 오랜 세월을 두고 수많은 유배객들을 받아들였던 적소(謫所)로서, 고려와 조선시대의 많은 유배객들이 거쳐간 유배문학의 산실이자 보고(寶庫)로서 대표적인 지역으로 소중한 유산이라는 점이다.

김만중의 유배관련 문화콘텐츠, 즉 유배문화는 남해군에 2010년 설립된 ‘남해유배문학관’으로 인해서 한층 발전되었다고 본다. 그런데 남해유배문학관에는 대표 유배인으로 내세우는 김만중뿐만 아니라, 고려시대부터 조선까지 문헌자료를 바탕으로 콘텐츠가 가능한 유배 인물로서 약 100명이 존재한다데 이들과 관련된 유배문화유산을 전시 및 보관하고 연구하고 있다.

구운몽원

구운몽원

사씨남정기원

사씨남정기원

서포문학비

서포문학비

김만중 시화

김만중 시화

남해유배문학관 전시실

남해유배문학관 전시실

남해 유배객 전시실

남해 유배객 전시실

2) 추사 김정희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는 조선후기 대학자로서 실사구시설을 제창했으며, 제주도에서 1840년부터 약 8년 3개월 동안 유배 생활을 하였다. 그러나 해배된 이후에 1851에는 함경도 북청으로 유배되었다가 2년 만에 해배된다. 그는 정계에 복귀하지 못한 채, 과천에서 은거하면서 학예(學藝)와 선리(禪理)에 몰두하다가 생을 마쳤다. 그는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전개한 선각자로 평가된다. 주목할 점이라면, 김정희는 유배 시절에 자신의 서체인 추사체를 확립하였으며 세한도 등 서화, 시문, 편지글, 산문 등 수많은 유배문학 작품들을 남겼다.

3) 다산 정약용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조선후기 대표적 실학자로서 전남 강진에서 1801년 신유교옥(辛酉敎獄)의 과정에서 그의 형제와 친지들은 처형되거나 유배되었다. 그도 그때부터 18여 년에 걸쳐서 강진에서 유배인으로 살았다. 그러나 그는 유배의 삶에서 절망을 딛고 경학연구와 다방면의 학술적 저술뿐만 아니라, 후학들을 위한 교육에 헌신함으로써 조선시대의 유배인으로서는 높은 가치를 지닌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그는 자신 때문에 폐족이 되어버린 데 대한 미안함과 안타까움을 많은 글로써 표현했고, 그렇지만 해야 할 일과 지켜야 할 도리에 대한 가르침을 통해 희망이 있음을 강조하는 삶을 견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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